
(사진 설명 : 산림자원은 살아있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머금었던 이산화탄소를 모두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이 원리 때문에 환경 과학에서는 산림을 무조건 방치하는 것보다, 나이가 들어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진 나무를 베어 목재(가구,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에 더 유리하다고 본다. 나무를 목재로 만들어 오래 사용하면 죽은 뒤에도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지 않고 계속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자리에 어린나무를 다시 심으면 새로운 탄소 흡수원이 생기게 된다. 사진 촬영 위치=평창군 5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거대한 신뢰의 시험대에 올랐다. 그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나무만 심으면 탄소 크레딧이 나온다”는 식의 느슨한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데이터 위조와 부풀려진 감축량, 즉 ‘그린워싱(Greenwashing)’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글로벌 자본 시장은 이제 탄소 크레딧을 단순한 환경 기여 증서가 아닌, 엄격한 ‘품질 자산’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 최전선에 월가의 거인 JP모건 채이스(J.P. Morgan Chase)가 있다. JP모건의 디지털 자산 및 블록체인 전담 부문인 키넥시스(Kinexys)가 발간한 백서『Carbon Markets Reimagined: Scale, Resiliency, and Transparency through Digital Assets』는 자본이 움직이기 위한 고품질 탄소 크레딧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한다. 월가가 요구하는 무결성(Integrity)의 본질은 무엇일까.
월가의 투자 기준은 철저히 과학적 추적 가능성과 리스크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JP모건이 제시한 핵심 원칙에 따르면, ① 투명성과 데이터 무결성(Transparency & Data Integrity)은 모든 탄소 감축 활동은 명확히 문서화되어야 하며 분산원장(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데이터의 기록과 관리 과정에서 변조가 불가능한 추적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신뢰의 출발점이다. 또한 자본 유입을 통해서만 실질적인 추가 감축이 일어났음을 증명해야 하는 ② 추가성(Additionality)이 필수적이며, 프로젝트 자금이 없었더라도 당연히 시행되었을 법적 규제나 일반적 비즈니스 활동(BAU)은 제외된다.
포집된 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재방출될 리스크를 통제하는 ③ 영구성(Permanence) 역시 중요한데, 이는 최근 산림 보존 프로젝트들이 가장 크게 지적받는 약점이기도 하다. 감축량은 주관적 예측이 아닌 과학적이고 표준화된 방법론으로 측정되고 보고되는 ④ 엄격한 MRV(Monitoring, Reporting, & Verification) 체계를 거쳐 독립적인 제3자 기관의 검증을 통과해야 금융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얻는다.
동시에 특정 구역의 탄소를 줄인 결과로 인해 다른 구역의 배출량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차단하는 ⑤ 누출 방지(No Leakage)가 이루어져야 하며, 단순 탄소 저감을 넘어 생물 다양성 보전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 등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기여하는 ⑥ 사회적·환경적 공동 편익(Co-benefits)을 제공하는 크레딧일수록 시장에서 ‘프리미엄 자산’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에 더해 이중 판매를 막기 위해 크레딧에 대한 ⑦ 법적 권리 및 소유권의 명확성(Legal & Regulatory Clarity)이 확보되어 파리협정 제6조 등 국제 규제 체계와 완전히 맞물려야 하고, 탄소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수질 오염이나 생태계 교란 등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 ⑧ 환경적 무해성(Do No Harm)이 전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유동성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로 표준화가 가능하고 타 지역 및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⑨ 확장성 및 시장성(Scalability & Marketability):을 갖춘 모델만이 무결성 자산으로 인정받는다.
JP모건이 제시한 원칙 중 특히 ‘영구성(Permanence)’과 ‘공동 편익(Co-benefits)’은 최근 환경 과학계와 자본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교차점이다.
흔히 산림 자원은 영원한 탄소 흡수원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과학적 실상은 다르다. 산림은 살아있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화되거나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머금었던 탄소를 다시 대기 중으로 모두 방출한다. 즉, 무조건적인 ‘방치’는 탄소 관리 관점에서 금융적 리스크(Reversal Risk)를 키울 뿐이다.
이를 해결하는 고품질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순환 경영’에 있다.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진 노령목을 적기에 베어내고, 이를 가구나 건축 자재 같은 목재(WPM)로 가공하는 것이다. 나무를 가구로 만들어 오래 사용하면, 죽은 뒤에도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지 않고 인공 구조물 내에 장기간 ‘고정(Storage)’된다.
동시에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어린나무를 다시 심으면 대기 중의 탄소를 훨씬 빠른 속도로 흡수하는 새로운 흡수원이 가동된다. 금융 시장이 주목하는 ‘고품질 산림 크레딧’은 바로 이처럼 과학적 고정 기술과 자연의 흡수 능력이 결합된 역동적인 순환 구조에서 탄생한다.
JP모건 키넥시스의 이번 백서는 결국 탄소 시장이 ‘보여주기식 ESG’의 단계를 지나 ‘RWA(실물자산 토큰화)’ 중심의 제도권 금융 체계로 완전히 편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산림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여 목재 가공을 통해 탄소를 영구히 고정하고, 이 일련의 데이터를 블록체인상에서 실시간으로 검증해 내는 기술적 완결성. 이것이 갖춰진 크레딧만이 글로벌 탑티어 금융기관들의 자금을 유치하게 될 것이다. 이제 탄소 시장에서 품질은 곧 가격이며, 신뢰는 곧 생존이다.(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
- 본 기사는 JPMorgan 산하 Kinexys가 2025년 발간한 백서『Carbon Markets Reimagined: Scale, Resiliency, and Transparency through Digital Assets』를 바탕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