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 시대, 인도는 왜 탄소배출권을 붙잡기 시작했나

(사진 설명 : AI 이미지 컷)
한때 인도는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대표적인 공급국이었다. 값싼 재생에너지 크레딧과 산림·취사도구 기반 상쇄배출권은 세계 기업들의 넷제로 전략 속에서 빠르게 거래됐고, 인도는 국제 탄소시장 안에서 사실상 ‘저가 감축 공급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뉴델리의 움직임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인도 정부가 이제 탄소배출권을 단순한 환경상품이 아니라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탄소 규제 차원을 넘어선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화되면서 인도 정부 내부에서는 “지금 값싼 탄소감축 실적을 해외에 넘겨버리면, 미래에는 자국 산업이 훨씬 더 비싼 비용으로 탈탄소를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특히 철강·시멘트·알루미늄·정유 같은 고탄소 제조업은 향후 유럽 시장 수출 과정에서 탄소배출량 검증 압박을 직접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인도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확보 가능한 값싼 감축 수단을 해외 기업의 넷제로 수단으로 소모시키기보다, 자국 제조업의 ‘탄소 방패막이’로 남겨두는 편이 전략적으로 유리해지는 구조다.
그 배경에는 파리협정 제6조 체계도 자리 잡고 있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감축 실적은 ‘상응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해외에 판매된 감축량은 자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계산에서 제외된다. 즉 지금 해외에 판매한 탄소 감축량은 미래 인도 산업이 사용할 수 없는 감축 자산이 되는 셈이다. 인도처럼 산업화와 탄소감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국가에서는 이 문제가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과 직결된다.
실제로 인도는 최근 자국형 탄소시장(ICM·Indian Carbon Market)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 도입된 탄소크레딧거래제도(CCTS)를 중심으로 철강·시멘트·알루미늄·석유정제 등 주요 산업군에 대한 탄소 규제 인프라가 빠르게 설계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이를 CBAM 대응을 위한 장기적 산업 방어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도는 앞으로 탄소를 해외 판매용 금융상품이 아니라 자국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보유 자산’으로 관리하려는 흐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정책 변화 속에서도 바이오차(Biochar) 기반 탄소제거 시장만큼은 오히려 글로벌 자본 유입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영국 탄소제거 플랫폼 Supercritical 과 인도·덴마크 기후기술 기업 MASH Makes가 체결한 약 1만 톤 규모의 바이오차 선구매 계약은 시장에서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기존 회피형(avoidance) 상쇄배출권이 규제 불확실성과 신뢰도 논란 속에 흔들리는 반면, 장기 탄소제거(CDR·Carbon Dioxide Removal) 분야는 여전히 국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도 카르나타카주 우두피(Udupi)에 위치한 MASH Makes는 농업 부산물을 열분해(Pyrolysis) 기술로 처리해 바이오차를 생산한다. 농민들이 노천 소각하던 목화 줄기나 농업 폐기물을 산소 제한 환경에서 가열하면 안정적인 탄소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를 토양에 활용할 경우 장기간 탄소 저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이오차 시장의 핵심 논리다. 동시에 토양 보수력 개선과 농업 생산성 향상, 노천 소각 감소 같은 공동 편익(Co-benefits)도 기대할 수 있어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바이오차는 기존 저가 상쇄배출권과 달리 “얼마나 오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가”라는 영속성(permanence)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핀란드 기반 탄소제거 인증 플랫폼 Puro.earth 에 따르면 바이오차는 최근 durable carbon removal(장기 탄소제거·CDR)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친환경 유행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탄소 조달 전략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탄소시장에서는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공급 과잉과 추가성(additionality) 논란 속에 기존 회피형 크레딧 가격은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지만, 바이오차 같은 durable CDR은 검증 수준과 저장 특성에 따라 훨씬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를 ‘품질 중심 이동(Flight to Quality)’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제 단순히 가장 싼 배출권을 찾기보다, 규제기관과 투자자들에게 설명 가능한 과학적 탄소제거 자산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인도의 사례는 글로벌 탄소시장이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처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가 상쇄배출권 시대는 점차 약해지고,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전략 차원에서 탄소를 관리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장은 점점 두 개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공급 과잉과 신뢰도 논란 속에 흔들리는 저가 회피형 크레딧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오차·DAC(직접공기포집)·BECCS 같은 고품질 엔지니어드 탄소제거 시장이다.
지금 글로벌 자본은 점점 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탄소시장의 다음 경쟁은 더 이상 “얼마나 싼 탄소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저장되고 얼마나 검증 가능한 탄소인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