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한국 탄소시장 10년 전 한국거래소(KRX)가 열었지만, 한국 탄소금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사진 설명 : AI 이미지 컷)
2015년 1월 12일.
한국거래소(KRX)는 부산 본사에서 국내 최초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K-ETS)을 개장했다. 한국 산업사에서 이 날은 단순한 신규 시장 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 경제가 처음으로 “탄소에도 가격을 부과한다”는 원칙을 공식 제도화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시장 메커니즘 기반의 온실가스 감축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전·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525개 대규모 배출기업이 시장에 편입됐고, 기업들은 이제 생산비뿐 아니라 탄소비용까지 계산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한국의 K-ETS는 시작 자체는 빨랐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가 단위 배출권 거래시장을 비교적 선도적으로 도입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냉정하게 돌아보면, 한국 탄소시장은 여전히 “정책시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 시장은 사실상 거래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고, 정부는 가격 급등을 우려해 공급과 거래를 강하게 통제했다. 시장은 존재했지만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은 약했다. 탄소가격이 산업 전환 신호로 작동하기보다는 행정관리 대상처럼 운영됐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문제는 지금도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탄소를 산업전략과 금융질서의 핵심 축으로 사용하고 있다. EU ETS는 단순 규제시장이 아니라 철강·에너지·투자·무역 정책과 연결된 거대한 탄소금융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여기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더해지면서 탄소배출량은 사실상 새로운 관세 개념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감축 의무 이행 시장”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배출권 가격 변동성은 크지만 시장 유동성은 낮고, 금융 참여는 제한적이며, 국제 탄소시장과의 연결성도 충분하지 않다. 기업들은 탄소를 미래 투자자산으로 보기보다 여전히 규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실물 탄소감축 산업”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탄소시장의 핵심은 결국 실제로 탄소를 줄이거나 제거하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산림흡수원, 바이오차, 농업 탄소저감, 블루카본 같은 분야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MRV(측정·보고·검증) 체계 역시 국제 기준 대비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2026년 4월 27일 출범한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VCM) 얼라이언스는 중요한 신호로 평가된다. 이번 얼라이언스 출범은 기존 K-ETS 중심 구조를 넘어 민간 중심의 자발적 탄소시장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국제 탄소크레딧 시장과의 연계, 민간 감축사업 확대, 산림·바이오차 기반 탄소제거 사업 활성화, 글로벌 수준의 인증체계 구축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하지만 업계 안에서는 여전히 회의론도 적지 않다.
국내 VCM은 아직 국제 신뢰도와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 크레딧 품질 기준도 명확하게 정착되지 않았고, 프로젝트 규모 역시 글로벌 시장 대비 작다. 결국 “한국형”이라는 이름만 남고 국제 시장에서 통용되지 못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탄소시장은 더 이상 환경 캠페인의 영역이 아니다. 이미 세계는 탄소를 새로운 무역 언어이자 산업 통화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아남는 국가는 탄소를 가장 잘 줄이는 나라가 아니라, 탄소를 가장 정교하게 측정하고, 금융화하고, 국제 신뢰 자산으로 만드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탄소시장이 “출발”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진짜 경쟁의 시간이 될 수 있다. 2015년 KRX 개장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장의 존재 자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과연 탄소를 새로운 산업 자산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