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2040년대까지 연장 검토

(사진 설명 : AI 이미지)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 사이 새 균형점 모색

유럽연합(EU)이 탄소배출권거래제(ETS) 개편 과정에서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대한 무상 배출권 할당을 2040년대까지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제도 연장이 아니라, 유럽의 기후정책이 산업 경쟁력 보호와 탈탄소 전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내부 검토 문건에 따르면 EU는 철강, 화학, 난방설비 등 탄소 감축이 어려운 산업 부문에 대해 일정 수준의 무상 배출권을 계속 제공하는 대신, 해당 기업들이 유럽 역내 생산시설과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현재 EU ETS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시장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도입된 이후 발전, 철강, 화학, 시멘트, 항공 등 주요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가격을 부과해 기업들의 탈탄소 투자를 유도해 왔다. 적용 대상은 유럽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에 달한다.

특히 ETS는 매년 막대한 재원을 창출하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배출권 거래 관련 수입은 430억 유로(약 68조 원)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원은 회원국들의 에너지 전환과 산업 탈탄소화 투자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어진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인해 유럽 산업계의 비용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제조업 지원정책과 중국의 저가 공세까지 겹치면서 유럽 내 제조업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U 집행위가 검토 중인 개편안의 핵심은 “배출권 무상할당의 단순 연장”이 아니다. 기업들이 유럽 역내 공장 현대화, 전기화 설비 구축, 수소 인프라 도입, 탄소포집기술(CCUS) 투자 등에 실제로 나설 경우에 한해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부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는 탄소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산업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정책 철학을 전환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EU가 이러한 방향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현실적인 고민도 존재한다. 집행위는 2040년 이후에도 철강, 화학, 시멘트 등 일부 산업에서는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완전한 탄소 제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감축이 어려운 배출(Hard-to-Abate Emissions)’이 상당 기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폴란드와 동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급격한 탄소비용 증가에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전력 가격 상승과 산업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ETS 개편 과정에서 보다 유연한 지원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산업 전환 투자 촉진을 위해 2030년 이전 약 300억 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미 탈탄소 투자에 적극 나선 기업들은 기존의 경쟁 우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스웨덴 철강기업 SSAB는 수십억 유로 규모의 탈탄소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며, 향후 투자 결정 역시 무상할당 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 논의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 역시 배출권거래제(K-ETS)를 운영하고 있으며,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주요 산업의 국제 경쟁력과 탄소중립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EU가 탄소 규제 강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 투자 유인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한국 ETS 제도 개편 과정에서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 공급망 전략이 결합된 경제 정책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EU ETS 개편 논의는 글로벌 탄소정책이 ‘규제’에서 ‘전환 투자’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7월 중순 관련 개편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며, 글로벌 탄소시장과 산업계는 그 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한국탄소신문/이정미 기자)

작성자 한국탄소신문
LEFT 광고
RIGHT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