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2.0 현실화, 완제품까지 확대

(사진 설명 : AI 이미지)

한국 제조업 공급망 전반에 탄소추적 의무 현실화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적용 범위를 철강·알루미늄 등 기초 원자재에서 자동차 부품과 산업용 기계, 가전제품 등 하위 가공제품(Downstream Goods)으로 확대하는 데 회원국 차원의 합의를 마쳤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CBAM이 원자재 중심 규제에서 완제품 공급망 전체를 겨냥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열린 EU 경제·재무장관 이사회(ECOFIN)는 철강과 알루미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약 180개 품목을 CBAM 적용 대상에 추가하는 개정안에 대한 공동 입장(Common Position)을 채택했다. 이번 합의안은 향후 유럽의회 및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의 최종 3자 협상(Trilogue)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며, 시행 목표 시점은 2028년 1월 1일이다.

새롭게 포함되는 품목에는 자동차 부품, 산업용 기계, 금속 케이블, 실린더, 산업용 라디에이터, 주방 설비, 세탁기 등 다양한 완제품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 등 기초 소재를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소재를 활용해 생산된 완제품까지 규제 범위가 확대된다.

EU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이른바 ‘탄소누출(Carbon Leakage)’ 문제가 있다. 유럽 내 기업들은 EU 배출권거래제(ETS)에 따라 탄소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완제품은 이러한 비용 부담 없이 유럽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EU는 이러한 구조가 역내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탄소감축 효과도 떨어뜨린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확대 대상 품목의 94%가 철강과 알루미늄 함량이 높은 산업용 공급망 제품이며, 나머지 6%는 일반 소비재 성격의 가전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CBAM이 소비재 규제보다는 산업 공급망의 탄소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EU는 동시에 우회 수출과 허위 신고를 막기 위한 장치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이 낮은 것으로 분류되는 가공 전 금속 스크랩(pre-consumer scrap)을 활용해 배출량을 낮게 신고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EU는 해당 스크랩을 공식 배출량 산정 체계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한 수입 기업이 제출한 배출량 데이터에 대한 검증 권한도 강화된다. 집행위원회가 허위 또는 기만적 신고 정황을 발견할 경우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해당 국가의 기본 배출계수(Default Value)를 적용해 탄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공급망 전반의 배출량 데이터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EU는 급격한 제도 변화가 역내 산업에 미칠 충격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CBAM 인증서 판매 수익의 일부를 활용한 ‘한시적 탈탄소 기금(Temporary Decarbonisation Fund)’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기금은 탈탄소 노력을 입증한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비용 일부를 환급해주는 제도로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 산업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CBAM의 영향 범위가 예상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철강과 알루미늄 생산기업이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해당 소재를 사용하는 자동차, 가전, 기계, 산업설비 제조기업까지 공급망 관리 의무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체들은 원재료 단계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추적·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향후 제품 경쟁력은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탄소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CBAM은 더 이상 철강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ECOFIN 합의는 유럽이 탄소 규제의 범위를 원자재에서 완제품으로 확장하겠다는 명확한 신호이며, 한국 제조업 역시 공급망 전반의 탄소 데이터를 관리하는 새로운 경쟁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탄소중립이 환경 정책을 넘어 무역 규칙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

작성자 한국탄소신문
LEFT 광고
RIGHT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