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 AI 이미지)
충남 당진시가 최근 울산 남구와 함께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됐다. 표면적으로는 철강산업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지만, 그 이면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탄소규제와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당진은 국내 최대 철강 생산 거점 가운데 하나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중심으로 철강 제조와 가공, 물류, 항만 산업이 집적돼 있으며 수만 명의 직간접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철강시장은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 저가 수입재 증가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탄소규제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제품 수출 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사실상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구조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도 탄소배출 감축을 무역 정책과 연계하면서 철강산업은 과거의 가격 경쟁력 중심에서 탄소 경쟁력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 역시 이러한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2024년 국내 조강 생산량은 6360만 톤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당진지역 주요 철강기업들의 영업이익은 2023년 2623억 원 흑자에서 2024년 444억 원 적자로 전환됐으며, 국세 납부액은 같은 기간 5063억 원에서 1228억 원으로 75.7% 감소했다. 법인지방소득세 역시 317억 원에서 28억 원으로 급감하면서 지역경제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단순한 경기순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철강산업은 국내 제조업의 핵심 기간산업이지만 동시에 대표적인 탄소다배출 산업으로 꼽힌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 공정은 대규모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7~8%가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탄소배출 저감 여부가 향후 기업 생존을 좌우할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진시의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은 저탄소 철강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으로 2년 동안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지방투자촉진보조금, 금융지원 확대 등을 통해 기업들의 경영 부담을 완화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탄소중립 기술 투자와 산업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당진이 국내 최초의 ‘저탄소 철강특구’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증, 전기로 확대, 재생에너지 활용,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시설 구축 등을 통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향후 시행될 K-스틸법과 연계해 저탄소 철강 생산체계를 구축할 경우 국가 지원 확대와 민간 투자 유치도 기대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 역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탄소배출이 비용으로 인식됐지만 앞으로는 감축 성과 자체가 기업의 자산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철강기업들이 배출량 감축에 성공할 경우 탄소배출권 확보와 ESG 경쟁력 강화, 친환경 제품 프리미엄 확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당진 철강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기 속에는 새로운 기회가 존재한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이 단순한 생존 지원을 넘어 저탄소 철강산업 전환의 계기가 된다면 당진은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대표 녹색산업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