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Ti 새 넷제로 기준 공개, 글로벌 탄소시장 재편돼 한국 기업도 탄소 전략 수정해야

(사진 설명 : AI 이미지)

글로벌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검증하는 대표 국제기구인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가 새로운 ‘기업 넷제로 표준(Corporate Net-Zero Standard V2.0)’을 공식 공개하면서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 개정은 기업의 직접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 원칙으로 유지하면서도, 고품질 탄소 제거(Removals)와 가치사슬 외부 감축(Beyond Value Chain Mitigation·BVCM)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제 탄소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SBTi는 기업이 탄소크레딧을 활용해 배출량을 상쇄하는 방식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V2.0에서는 감축이 어려운 잔여 배출(Residual Emissions)에 대해 고품질 탄소 제거 활동과 가치사슬 외부 감축의 활용 원칙을 보다 명확히 제시했다. 특히 기존 BVCM 개념을 ‘지속 배출 책임(Ongoing Emissions Responsibility·OER)’이라는 체계로 발전시키고, 기업의 참여 수준과 기후 리더십을 단계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제 탄소시장에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침체를 겪었던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일부 글로벌 시장 분석에서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준에 맞춰 최소 수준의 참여만 확대하더라도 자발적 탄소크레딧 수요가 현재보다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이러한 전망은 시장 분석기관들의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것으로, 실제 수요 확대 규모는 기업의 참여 수준과 각국의 제도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이번 개정안에서 또 하나 주목받는 분야는 탄소 제거(Removals)다. SBTi는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잔여 배출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직접대기포집(DAC),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ECCS) 등 기술 기반 탄소 제거(Engineered Removal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의 탄소 제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구매계약(Forward Offtake)을 확대하고 있으며, 기술 기반 탄소 제거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SBTi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2035년 이후 지속 배출에 대한 책임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 규제처럼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글로벌 투자기관과 고객사들이 SBTi 기준을 기업 평가의 핵심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제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국제 기준 변화는 국내 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2026~2030년)을 통해 시장 기능을 강화하고 배출권거래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철강·석유화학·반도체·이차전지 등 국제 경쟁에 노출된 산업은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고려해 무상할당을 유지하는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또한 국외 감축실적 인정 기준도 국제 기준에 맞춰 지속적으로 정비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과제는 점점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해야 하는 동시에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기관이 요구하는 SBTi 기준까지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신뢰성 있는 탄소 제거 전략과 고품질 탄소크레딧 확보 능력까지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기술 기반 탄소 제거 크레딧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고품질 제거 크레딧의 가격 상승과 장기 계약 경쟁이 심화될 수 있어 기업들의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단기적인 규제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탄소 조달 전략과 내부 탄소가격 체계를 재정비하고, 글로벌 탄소시장 변화에 맞춘 중장기 투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SBTi V2.0은 단순한 기준 개정이 아니라 기업의 기후경영 방식과 국제 탄소시장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탄소 경쟁력은 배출량 감축을 넘어 고품질 탄소 제거와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탄소자산 확보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 역시 국내 제도 변화에만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기준에 맞춘 탄소경영 전략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

 

작성자 한국탄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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