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 한국탄소신문이 CIX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래프. CORSIA Phase 1(CP1) 벤치마크 가격은 올해 첫 거래일 톤당 19.10달러에서 6월 중순 9.40달러까지 약 50.8% 하락했다. 2월 초 추가 적격 공급 유입과 5월 말 EU 규제 불확실성이 두 차례 주요 가격 급락을 이끌었다. 자료=CIX Intelligence H1 2026 Market Pulse, 한국탄소신문 재구성)
CIX ‘H1 2026 Market Pulse’ 심층 분석… CORSIA·자율적 탄소시장 디커플링 심화, 메탄 감축·REDD+ 중심으로 시장 재편
CIX(Climate Impact X)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탄소신문이 재구성한 그래프를 보면 2026년 상반기 글로벌 탄소시장은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Phase 1(CP1) 벤치마크 가격은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초 톤당 19.10달러에서 6월 중순 9.40달러까지 약 50% 하락했다.
특히 그래프는 2월 초 추가 적격 공급 유입과 5월 말 EU 규제 불확실성 확대라는 두 차례 충격이 시장 가격을 급격히 끌어내렸음을 한눈에 보여준다. 싱가포르 글로벌 탄소거래소인 Climate Impact X(CIX)가 최근 발표한 ‘CIX Intelligence H1 2026 Market Pulse’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라 CORSIA 시장과 자율적 탄소시장(VCM)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CORSIA 시장, 공급보다 규제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대
그래프를 보면 가격 하락은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는 2월 초다. CP1 벤치마크는 19.10달러에서 16.10달러까지 급락했다. 이는 골드스탠다드(Gold Standard)에 이어 베라(Verra)의 쿡스토브 프로젝트가 CORSIA 적격(CP1 Eligible) 라벨을 획득하면서 시장에 대규모 공급이 유입된 시기와 일치한다. 이후 가격은 3월 15.20달러, 4월 13.80달러, 5월 중순 12.55달러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두 번째 충격은 5월 말 발생했다. 불과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가격은 12.55달러에서 10.00달러로 다시 급락했고, 6월 중순에는 9.4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유럽 항공사의 CORSIA 인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EU ETS 적용 확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구매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번 하락은 공급 증가보다 규제 불확실성이 시장 가격을 더 크게 흔든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CORSIA 시장이 이제는 공급 부족보다 국제 규제와 정책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탄소배출권도 ‘품질 프리미엄’ 시대… 시장은 세 개의 가격대로 재편
이번 보고서는 CORSIA 시장이 프로젝트 품질에 따라 명확한 가격 계층(Tiering)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최하위 시장은 프로젝트를 특정하지 않는 범용(Generic) CP1 공급으로 톤당 9달러 후반~10달러 초반 수준에서 거래되며 시장의 최저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간 시장은 실거래가 활발한 프로젝트별(Project-specific) 크레딧으로 주로 쿡스토브 사업이 포함되며 10달러 초·중반대를 형성했다.
최상위 시장은 관할권 REDD+(Jurisdictional REDD+)와 일부 프리미엄 쿡스토브 프로젝트가 차지했으며 18~20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같은 탄소배출권이라도 프로젝트의 품질과 신뢰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구조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자율적 탄소시장, 메탄 감축이 급부상… 풍력은 절반 이하로 감소
CORSIA와 달리 비(Non)-CORSIA 자율적 탄소시장에서는 프로젝트 유형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CIX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거래 비중은 REDD+ 21.3%, 쿡스토브 18.4%, 풍력발전 12.4% 순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세 분야가 전체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시장의 주도권은 크게 이동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메탄 감축 분야다. 가축분뇨 메탄 소화조(Manure Methane Digester)는 올해 1분기 2.34%에서 2분기 7.22%로 세 배 이상 증가하며 모든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풍력 프로젝트는 2025년 하반기 23.6%에서 올해 2분기 10.5%까지 절반 이상 감소했다.
태양광·수력 등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전체 비중도 지난해 약 29%에서 올해 약 18%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는 시장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감축사업보다 메탄 감축처럼 추가성과 환경효과가 명확한 프로젝트를 더욱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산림도 ‘조림’보다 ‘보존’… REDD+가 시장 주도
자연기반(Nature-based) 프로젝트에서도 시장의 선택은 분명했다. REDD+는 상반기 거래의 21% 이상을 유지하며 가장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반면 신규 조림·재조림(ARR)은 지난해 상반기 8.43%에서 올해 4.89%로 감소해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1분기 6.37%였던 ARR 비중은 2분기 2.77%까지 떨어졌다. 이는 신규 산림을 조성하는 사업보다 기존 산림을 보호하는 REDD+ 프로젝트가 국제 시장에서 더 높은 신뢰와 수요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벤치마크는 안정세… 국가와 인증체계가 가격을 좌우
자율적 탄소시장의 주요 벤치마크는 CORSIA처럼 급락하지 않았다. REDD+ 벤치마크인 CNX(CIX Nature X)는 상반기 동안 톤당 2달러 안팎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고, ARR 벤치마크인 CAX(CIX ARR X)도 12달러 안팎의 가격대를 꾸준히 지켰다. 쿡스토브 벤치마크(CCX)는 국가와 인증체계에 따른 가격 차이가 더욱 뚜렷해졌다.
최저개발국(LDC)·골드스탠다드(GS) 조합이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했고, 개발도상국(DC)·베라(VCS) 조합은 가장 낮은 가격대를 유지했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발행 국가와 인증 기준이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품질 프리미엄’ 구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읽어야 할 신호… ‘싼 크레딧’보다 ‘좋은 크레딧’의 시대
이번 CIX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글로벌 탄소시장이 더 이상 ‘싼 배출권을 많이 확보하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국제 규제 적격성과 프로젝트 품질, 인증체계가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2027년 CORSIA 2단계 의무 이행과 국내 ESG 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되면 국내 항공업계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제조기업들도 단순히 저렴한 크레딧을 확보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고품질 프로젝트 중심으로 탄소조달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
이번 보고서는 글로벌 탄소시장이 ‘공급 중심 시장’에서 ‘규제 중심 시장’으로, ‘가격 중심 시장’에서 ‘품질 중심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기업의 탄소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크레딧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품질의 크레딧을 확보했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