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P가 던진 ‘자연경제의 역설’, 자연보호에 1달러, 자연파괴에 30달러

(사진 설명 : 전북 전주 대아저수지의 물이 가뭄으로 많이 줄었다. 촬영 2026.08.06)
탄소중립 다음은 자연경제… 자연기반해법(NbS),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부상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정작 세계의 투자 흐름은 여전히 자연을 살리는 곳보다 자연을 파괴하는 곳으로 훨씬 많이 향하고 있다. 폭염과 홍수, 가뭄, 산불, 생물다양성 붕괴가 동시에 심화되는 복합위기의 시대에도 경제 시스템은 자연을 소비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보고서가 유엔환경계획(UNEP)이 올해 발표한『State of Finance for Nature 2026』다.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는 1972년 설립된 유엔(UN) 산하 환경 전문기구로, 본부는 케냐 나이로비에 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오염, 자원순환, 자연자본 등 국제 환경정책을 총괄하는 대표 기관으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금융기관, 기업들이 정책과 투자 방향을 수립할 때 참고하는 세계적인 환경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첫 문장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자연을 보호하는 데 1달러를 투자하는 동안 자연을 파괴하는 활동에는 30달러가 투자되고 있다.” 이 한 문장은 오늘날 세계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모순을 보여준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자본은 여전히 자연을 훼손하는 산업과 개발사업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탄소’를 넘어 자연의 붕괴다
기후위기는 이제 단순한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폭염과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와 장기 가뭄이 반복되고 있으며, 산림과 습지 감소, 토양 황폐화, 생물다양성 손실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자연생태계의 붕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UNEP는 이러한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 감축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자연 자체를 회복시키는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중심에 있는 개념이 바로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 이다.
돈은 아직도 자연을 파괴하는 곳으로 흐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자연을 훼손하는 경제활동에는 연간 7조3천억 달러가 투입되고 있다.
여기에는 화석연료 개발과 환경 부담이 큰 산업, 대규모 토지 개발, 산림 훼손, 집약적 농업 등 자연자본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경제활동이 포함된다. 반면 숲과 습지 복원,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블루카본, 토양 복원, 친환경 농업 등 자연기반해법에 투자되는 자금은 연간 2,200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간투자다. 자연기반해법에 대한 민간부문의 직접 투자는 230억 달러에 불과해 대부분을 정부 재정이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UNEP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투자 불균형이라고 진단했다.
자연기반해법은 가장 경제적인 기후투자
UNEP는 자연기반해법을 환경보호 활동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기후 투자로 평가한다.
숲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최대의 탄소저장고이자 폭염을 완화하는 천연 냉방장치이며, 습지는 홍수를 줄이고 수질을 개선하는 자연 인프라다. 해양의 염습지와 잘피숲, 맹그로브 등 블루카본 생태계는 장기간 탄소를 저장하면서 해안 침식을 완화한다.
농경지의 건강한 토양은 탄소를 저장하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고, 도시숲과 녹지는 열섬현상을 완화하며 시민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인다. 즉, 자연기반해법은 탄소 감축뿐 아니라 기후 적응, 생물다양성 보전, 물관리, 식량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대표적인 다중편익(Multiple Benefits) 투자라는 것이다.
탄소중립 다음은 ‘자연경제’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자연전환경제(Nature Transition Economy)’ 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탄소경제가 온실가스 감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라면, 자연경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산업과 금융, 투자 구조를 전환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UNEP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Nature Transition X-Curve’ 모델을 제시했다.
자연을 파괴하는 투자와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줄이고, 산림 복원과 습지 복원, 블루카본, 지속가능한 농업 등 자연기반해법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금융과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새로운 경제 전략으로 평가된다.
2030년까지 자연투자 2.5배 확대해야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연기반해법 투자를 현재보다 약 2.5배 확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연간 약 2,200억 달러 수준인 투자를 2030년까지 5,710억 달러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UNEP는 이 정도 규모는 세계 GDP의 약 0.5%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즉, 필요한 자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투자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자연을 훼손하는 분야에 집중되는 자금 일부만 자연 회복으로 전환해도 기후와 생물다양성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탄소시장도 ‘양’보다 ‘질’의 시대로
이번 보고서는 자발적 탄소시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앞으로 탄소시장은 단순히 많은 크레딧을 발급하는 경쟁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하고 유지하는지를 평가하는 시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산림 복원과 블루카본, 토양탄소, 지속가능한 농업 등 자연기반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핵심 분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추가성, 영속성,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사회 참여 등 높은 환경적 무결성을 갖춰야만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UNEP는 강조했다.
대한민국도 ‘자연경제’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 해양 생태계 변화가 일상이 되고 있다.
도시숲과 바람길숲 조성, 습지 복원, 블루카본 확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장수명 목제품(HWP) 활용, 기존 도시 인프라의 탄소중립 전환은 더 이상 환경정책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목재 이용 확대는 건축물과 제품 속에 탄소를 장기간 저장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도시숲과 녹지는 폭염을 완화하고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자연기반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시장과 녹색금융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러한 자연자본은 앞으로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에 대한 투자가 미래를 결정한다
UNEP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투자의 방향이다. 자연을 보호하는 데 1달러를 투자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데 30달러를 쓰는 현재의 경제 구조로는 탄소중립도, 생물다양성 회복도 달성할 수 없다.
세계는 지금 ‘탄소경제(Carbon Economy)’에서 ‘자연경제(Nature Economy)’로의 전환을 시작하고 있다. 자연은 더 이상 개발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기후안보와 식량안보, 산업 경쟁력, 금융시장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 자연기반해법(NbS)에 대한 투자는 환경보호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제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UNEP의 이번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이제 ‘얼마나 탄소를 줄일 것인가’를 넘어 ‘얼마나 자연에 투자할 것인가’를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 할 수 있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