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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책 넘어 산업·금융·무역까지 통합… 2030년 저탄소 경제 전환 가속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탄소중립을 국가 발전전략의 중심축으로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중국 생태환경부(MEE)는 지난 7월 말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국가에너지국(NEA) 등 19개 정부 부처·기관과 공동으로 「제15차 기후변화 대응 5개년 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2030년 이전 탄소배출 정점(Peak Emissions)과 2060년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핵심 실행계획이다.
이번 계획의 특징은 새로운 감축 목표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에너지와 산업, 교통, 건물, 탄소시장, 녹색금융, 기후적응, 국제협력 등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정책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통합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중국은 기후변화를 더 이상 환경 분야의 정책으로 보지 않는다. 산업 경쟁력과 기술혁신, 금융, 무역, 에너지 안보를 함께 묶는 국가 성장전략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번 계획은 그 방향을 공식적으로 제시한 첫 종합 실행계획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장의 속도는 유지하고 탄소는 줄인다
이번 계획에서 중국은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인 탄소집약도를 2025년 대비 17% 감축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비화석에너지 비중을 25%까지 확대한다는 기존 목표를 재확인했다.
탄소집약도는 경제활동에 따른 탄소배출 효율을 의미한다. 즉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산업 전반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배출 증가세를 점진적으로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에도 국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대 상한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성장과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현실적인 접근을 유지하면서, 산업 구조와 에너지 체질을 바꾸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청정에너지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태양광 패널과 리튬이온 배터리, 전기차 생산국이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계획 역시 풍력과 태양광, 수력, 원자력 등 비화석에너지 확대를 지속하는 한편 초고압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함께 확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 전력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청정에너지 산업을 미래 제조업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산업 전략이다. 중국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속하는 이유는 탄소 감축뿐 아니라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메탄 감축, 새로운 탄소시장 성장축으로
이번 계획에서는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육불화황(SF₆) 등 비이산화탄소 온실가스 관리도 크게 강화됐다. 중국은 석탄광 메탄 회수사업 확대와 산업공정 저감기술 보급, 냉매 관리 등을 통해 단기간 온난화 효과가 큰 온실가스 감축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환경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메탄 감축사업은 자발적 탄소시장(CCER)의 핵심 프로젝트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 탄소시장에서도 메탄 감축 크레딧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중국은 이를 새로운 탄소시장 성장 분야로 육성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ETS, 이제 국제 규칙까지 겨냥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배출권거래제(ETS)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계획은 발전부문 중심의 ETS를 철강과 시멘트, 화학 등으로 확대하고 배출량 산정과 검증(MRV), 거래체계를 더욱 고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시에 국제 탄소시장 표준 마련과 국제 협력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이는 국내 탄소시장 운영을 넘어 국제 탄소가격과 거래 규칙 형성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앞으로 파리협정 제6조 국제 탄소시장이 본격 확대될 경우 중국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CCUS·수소·첨단 제조… 저탄소 산업 육성
철강과 시멘트, 화학산업은 중국 전체 탄소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이들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를 줄이기 위해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수소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 첨단 제조기술 등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비용이 아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미국·EU·중국… 탄소를 산업 경쟁력으로 활용하다
세계 주요 경제권은 모두 탄소중립을 산업정책과 연결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산업 투자와 제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앞세워 탄소 규제를 무역 질서와 연결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번 계획을 통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탄소시장, 녹색금융, CCUS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며 저탄소 경제를 국가 성장전략으로 본격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세 경제권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탄소중립을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준비해야 할 과제
중국의 이번 계획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제조국인 중국이 저탄소 산업 투자를 더욱 확대하면 태양광과 배터리, 전기차, 수소산업 등에서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국 ETS의 확대와 국제 탄소시장 참여는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K-ETS)의 경쟁력 강화와 국제 연계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CBAM 대응과 제품 탄소발자국 관리, 메탄 감축, CCUS 산업 육성 역시 개별 정책이 아니라 산업과 금융, 무역을 함께 고려하는 국가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 경쟁의 시대가 시작됐다
중국의 「제15차 기후변화 대응 5개년 계획」은 새로운 감축 목표를 발표한 문서라기보다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산업과 금융, 기술혁신, 무역을 연결하는 국가 전략을 구체화한 청사진에 가깝다. 탄소는 더 이상 환경정책만의 영역이 아니다. 산업정책이자 무역정책이며, 에너지 안보와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이번 계획을 통해 저탄소 산업 생태계 구축과 국제 탄소시장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앞으로 글로벌 경쟁은 ‘누가 탄소를 더 적게 배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탄소중립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고, 국제 시장과 기술 표준을 선도하느냐’의 경쟁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중국의 이번 계획은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정책 신호로 평가된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