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 2025년 10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제1차 격년 투명성 보고서(BTR1) 현지 기술전문가 검토 모습. 콜롬비아는 2026년 8월 8일 BTR2를 세계 최초로 제출했다. 사진= IDEAM Colombia)
콜롬비아 2024년 순배출량 2억7,673만 톤 중 에너지 부문이 38.1%로 최대 배출원
한국도 BTR2 제출 대상으로 탄소중립 ‘목표 선언’ 넘어 ‘데이터로 성과 입증’하는 시대로
세계 탄소중립 정책의 무게중심이 ‘얼마나 높은 감축목표를 세웠느냐’에서 ‘실제로 얼마나 줄였고, 그 성과를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콜롬비아가 파리협정에 따른 제2차 격년 투명성 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BTR2)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출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르면 콜롬비아는 지난 8월 8일 BTR2를 제4차 국가보고서(National Communication)와 함께 제출했다. 2026년 12월 31일 제출 시한보다 약 4개월 앞선 것이다. 콜롬비아는 이에 따라 파리협정의 강화된 투명성 체계(Enhanced Transparency Framework·ETF) 아래 두 번째 보고 주기에 가장 먼저 진입한 국가가 됐다.
2억7,673만 톤, 숫자보다 중요한 ‘데이터 정밀도’
콜롬비아의 BTR2가 주목받는 이유는 제출 속도만이 아니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흡수량을 산정하고 감축 성과를 추적하는 데이터 체계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콜롬비아 수문기상환경연구소(IDEAM)가 공개한 1990~2024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흡수 인벤토리에 따르면 2024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2억7,673만 톤CO₂eq으로 집계됐다.
배출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에너지 부문이 전체의 38.1%를 차지해 토지이용·토지이용변화·산림(LULUCF) 부문 27.4%를 넘어 최대 배출원으로 올라섰다. 농업은 21.0%, 폐기물 9.4%, 산업은 4.2%를 차지했다. 이는 콜롬비아의 기후대응 과제가 산림 훼손과 토지이용 문제를 넘어 에너지 전환과 화석연료 감축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BTR은 2년마다 제출하는 ‘국가 기후 성적표’
BTR은 파리협정 제13조에 따른 강화된 투명성 체계의 핵심 보고서다. 쉽게 말하면 각국이 국제사회에 제출하는 ‘국가 기후 성적표’다. 각국이 국가결정기여(NDC)를 통해 앞으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면, BTR은 그 약속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보여준다.
보고서에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흡수량을 비롯해 NDC 이행 진척도, 감축 정책과 조치, 기후변화 영향과 적응, 기후재원·기술이전·역량 강화와 관련된 정보 등이 담긴다. 제출된 보고서는 UNFCCC의 기술전문가 검토(Technical Expert Review)와 다자간 검토 절차를 거친다. 국가가 스스로 발표한 감축 실적을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기준과 절차를 통해 점검하는 구조다.
‘감축 목표 경쟁’에서 ‘성과 증명’으로
그동안 국제 기후정책에서는 각국이 2030년이나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겠다고 선언하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파리협정의 투명성 체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이제는 목표뿐 아니라 실제 감축 성과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측정하고 증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UNFCCC 역시 투명성을 파리협정 이행의 핵심 기반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정보는 국가 간 신뢰를 높이고 감축 약속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향후 기후정책을 강화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BTR을 통해 축적되는 국가별 데이터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을 통해 세계가 파리협정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콜롬비아의 세계 첫 BTR2 제출을 단순한 ‘제출 1호’ 이상의 변화로 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도 BTR2 시험대, 통계와 정책 성과 연결해야
한국도 이러한 국제 투명성 체계 안에 들어와 있다. 한국은 첫 번째 BTR을 제출하면서 파리협정 강화된 투명성 체계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이제 두 번째 보고 주기인 BTR2 제출 대상이 된다.
BTR2는 단순히 UN에 보고서 한 권을 제출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국가 온실가스 통계 작성과 검증, NDC 감축경로 추적, 산업·에너지·수송·건물·농축수산·폐기물 등 각 부문의 정책이 실제 감축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얼마나 정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콜롬비아가 제출 시한보다 4개월여 먼저 BTR2를 공개하면서 각국의 두 번째 투명성 보고 주기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가 탄소 데이터가 기업 경쟁력으로
더 중요한 것은 BTR을 둘러싼 데이터 경쟁이 정부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의 기후정보 공개와 공급망 탄소관리가 확대되면서 국가 온실가스 통계와 기업 배출량 산정, 제품 탄소발자국, 공급망 배출량 관리가 하나의 ‘탄소 데이터 생태계’로 연결되고 있다.
국가 배출계수와 에너지·산업 통계가 정밀해질수록 기업 역시 Scope 1·2·3 배출량과 제품 탄소발자국을 보다 신뢰성 있게 산정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특히 파리협정 제6조에 따른 국제 탄소시장에서도 감축량의 정확한 산정과 추적, 이중계산 방지 등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결국 국가의 탄소 데이터 관리 능력은 기후외교의 신뢰를 넘어 국제 탄소시장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 ‘목표 선언’ 넘어 ‘성과 증명’의 시대로
콜롬비아의 세계 첫 BTR2 제출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탄소중립 경쟁은 더 이상 “얼마나 줄이겠다고 약속했는가”만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실제로 얼마나 줄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 그리고 그 데이터를 국제사회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2030·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으로 이어지는 장기 감축경로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목표 설정 못지않게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와 검증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구축하는 국가 탄소 데이터와 산업계가 생산하는 기업·사업장·제품 단위의 탄소 데이터가 서로 연결될 때 한국의 기후정책도 국제사회에서 더욱 강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이제 탄소중립은 ‘감축 목표를 제시하는 시대’에서 ‘감축 성과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세계 첫 BTR2 제출은 파리협정이 목표 설정을 넘어 실제 이행 성과를 데이터로 확인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