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김, 먹거리에서 ‘탄소자산’으로 ‘바다연금’ 시대 연다

(사진 설명 : 서천의 김 양식장. 충남도 제공(c))
김 1톤당 CO₂ 4.92톤 흡수해 전국 생산량 적용하면 연간 353만 톤 규모
2025년 10월 IPCC, 해조류 신규 탄소흡수원 산정 방법론 개요에 포함
충남 실측 연구 본격화… 탄소시장 연결되면 어민 ‘바다연금’ 새 소득원 기대
한국인의 식탁을 책임지는 대표 반찬이자 K-푸드 수출의 핵심 품목인 ‘김’이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탄소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의 높은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주목받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도 해조류를 새로운 탄소흡수원으로 인정하기 위한 제도화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김 양식산업이 블루카본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 1톤이 이산화탄소 4.92톤 흡수
김은 성장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유기물로 전환한다. 육상에서 나무와 식물이 탄소를 흡수하는 것처럼 해조류 역시 해양 탄소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환경공단이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김 1톤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4.92톤에 달한다. 생산되는 김 무게의 약 5배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셈이다.
이를 지난해 전국 김 생산량 약 71만8000톤에 적용하면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약 353만2560톤으로 추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2025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1990~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7억720만 톤이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비교하면 전국 김 생산에 따른 이산화탄소 흡수 규모는 국내 전체 배출량의 약 0.5%에 해당한다.
서천 김 양식에서만 23만 톤 규모
국내 대표적인 김 생산지역인 충남 서천군의 사례는 김이 가진 탄소흡수 잠재력을 지역 단위에서 보여준다. 서천군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 김 생산량은 4만7851톤으로, 김 1톤당 4.92톤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적용하면 약 23만5427톤 규모다.
이는 서천군 전체 온실가스 감축량 24만6879톤의 95.4%에 해당한다. 서천군이 당초 설정했던 감축 목표 12만7587톤과 비교하면 전체 감축실적은 목표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동안 지역 특산물과 수출상품으로 평가받던 김이 이제 지역 탄소중립 정책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해양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10월 IPCC서 해조류 탄소흡수 논의 전환점
해조류 블루카본을 둘러싼 국제사회 움직임도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2025년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페루 리마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3차 총회에서는 해조류와 갯벌, 조하대 퇴적물 등 새로운 해양 탄소흡수원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서 산정하기 위한 방법론 보고서의 개요가 승인됐다.
기존 국제 블루카본 체계에서는 맹그로브와 염습지, 잘피 등이 대표적인 해양 탄소흡수 생태계로 다뤄져 왔다. 여기에 김·미역·다시마 등 해조류의 탄소흡수 효과를 국가 온실가스 산정체계에 반영할 수 있는 국제 방법론 마련이 추진되면서 세계적인 해조류 생산국인 한국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IPCC는 오는 2027년까지 관련 방법론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최종 보고서에 해조류 탄소흡수 산정방법이 반영되면 각국이 이를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활용할 수 있는 국제적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따라서 2025년 IPCC 총회는 김 자체를 곧바로 탄소크레딧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해조류가 국제적인 탄소흡수 산정체계로 진입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충남, 김 탄소흡수량 ‘실측’ 나섰다
국내에서도 국제 기준 마련에 대비해 김의 탄소흡수량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충남도는 올해 3월부터 서천 해역을 중심으로 김의 탄소흡수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군산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는 올해 말까지 양식 김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측정하고 빛과 수온 등에 따른 탄소흡수량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수치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는 생산량에 일정한 탄소흡수 계수를 적용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제 해역과 양식환경에서 김이 얼마만큼의 탄소를 흡수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다.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우리나라 해역과 김 양식환경에 적합한 탄소흡수 계수를 확보하고 향후 IPCC 국제 방법론과 연계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353만 톤이 곧 탄소크레딧은 아니다
김의 탄소흡수 잠재력이 크다고 해서 연간 353만 톤이 그대로 거래 가능한 탄소크레딧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블루카본 시장은 이미 단순한 탄소흡수량 경쟁에서 ‘고품질(High-Integrity) 탄소크레딧’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해서는 탄소흡수량뿐 아니라 추가성(Additionality), 영속성(Permanence), 누출 가능성, 중복계산 방지, 측정 정확성과 검증 가능성 등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김은 수확 후 대부분 식품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흡수한 탄소 가운데 얼마가 장기간 저장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과 그 탄소가 장기간 격리돼 실질적인 감축·제거 실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 블루카본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탄소를 흡수하느냐’에서 ‘그 탄소가 어디에 얼마나 오래 저장되고, 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MRV(Measurement, Reporting and Verification·측정·보고·검증)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K-김, 먹거리에서 ‘탄소자산’으로… ‘바다연금’ 시대 열리나
김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K-푸드를 대표하는 수출상품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탄소흡수라는 새로운 가치가 더해지고 있다.
전남 완도군은 해조류 블루카본을 탄소거래와 연결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지역 주민에게 환원하는 이른바 ‘완도형 바다연금’을 추진하고 있다. 해조류가 흡수한 탄소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해 어민과 지역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IPCC의 해조류 탄소 산정방법이 구체화되고 국내에서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MRV와 인증·거래체계가 마련된다면 어민은 김을 생산해 판매하는 기존 소득에 더해 탄소흡수에 따른 새로운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블루카본의 경쟁 기준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맹그로브와 염습지 등을 활용한 블루카본 프로젝트는 단순한 탄소흡수량을 넘어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역사회 기여, 과학적 MRV를 함께 평가하는 고품질 탄소크레딧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해조류까지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면 글로벌 블루카본 시장의 범위 자체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김 생산·수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김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를 넘어 탄소흡수량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탄소자산으로 전환하느냐로 확대될 전망이다.
연간 약 353만 톤으로 추산되는 김의 이산화탄소 흡수 잠재력을 실제 국가 탄소흡수량과 탄소시장 가치로 얼마나 전환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탄소 산정방법과 MRV 체계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인의 식탁을 공략한 K-김이 이제 ‘먹는 김’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김’으로, 다시 어민과 지역사회에 새로운 소득을 돌려주는 ‘바다연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