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 냉방센터 AI 이미지)
뉴욕, 평일 평균 585곳 운영…지난해 560곳보다 확대
21대 ‘COOL 밴’·2,200개 키오스크까지 동원해 취약계층 접근성 강화
시설 늘려도 거리·비용·위험 인식이 이용 가로막아…“몇 곳보다 누가 이용하느냐”
미국 곳곳에서 올여름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뉴욕을 비롯한 지방정부들이 냉방센터를 확대하고 취약계층을 직접 찾아가는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냉방시설을 늘려도 정작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거나 찾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면서 도시 기후적응 정책의 새로운 과제로 ‘접근성’이 떠오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지난 7일 뉴욕시 비상관리당국 등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뉴욕시는 올해 냉방센터 23곳을 추가했다. 올해 평일 하루 평균 운영되는 냉방센터는 585곳으로 지난해 평균 560곳보다 늘었다. 도서관과 커뮤니티센터, 노인센터 등 에어컨이 설치된 공공시설을 폭염 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냉방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뉴욕시의 폭염 대응은 올여름 한층 강화됐다. 시는 지난 7월 1일 체감온도가 최고 화씨 112도(약 44.4℃)에 이를 가능성에 대비해 추가 냉방센터를 개방하고 야외 수영장 운영시간을 연장하는 등 비상대책을 가동했다. 8개 시 소유 건물과 10개 공공도서관 지점 등을 냉방센터로 추가 개방하고, 거리 지원 인력도 150명 늘려 600명 이상으로 확대했다.
폭염에 따른 건강 피해도 이어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7월 3일 뉴욕에서 기온이 화씨 100도(약 37.8℃)를 넘어선 가운데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이 156명에 달했다. 최소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메인주에서도 7월 초 일주일여 동안 128명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메릴랜드에서는 올여름 들어 8월 초까지 최소 50명이 온열질환으로 숨져 이미 지난해 전체 사망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냉방센터 늘렸는데 왜 사람들은 가지 않을까
문제는 냉방센터의 숫자를 늘리는 것과 폭염 취약계층이 실제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저소득층은 에어컨이 없거나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냉방기를 충분히 가동하기 어려워 폭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하지만 냉방센터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이동수단이 부족하면 시설이 있어도 이용하기 어렵다.
특히 농촌지역이 많은 메인주에서는 냉방센터까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이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일부 주민은 극심한 더위를 위험으로 인식하기보다 집에서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해 냉방센터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인의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보호시설 등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은 공공 냉방공간까지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냉방센터가 존재한다’는 것과 ‘가장 위험한 사람이 실제로 냉방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인 셈이다.
21대 ‘COOL 밴’ 투입…냉방센터가 사람을 찾아간다
뉴욕시가 올해 강화한 대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Cooling Outreach On-Location’, 이른바 COOL 밴이다. 뉴욕시는 21대의 COOL 밴을 투입해 폭염에 취약한 시민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의료서비스와 전해질 음료, 자외선차단제, 식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냉방센터나 의료기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의료진이 고령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도록 했다. 폭염 취약계층이 냉방센터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데서 벗어나 냉방·의료서비스가 직접 시민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응 범위를 넓힌 것이다.
디지털 도시 인프라도 활용한다. 뉴욕시는 2,200개가 넘는 LinkNYC 키오스크를 활용해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는 가장 가까운 냉방센터까지의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야외노동자를 위한 대책도 강화했다. 거리 노점상과 배달노동자, 일용직 근로자 등을 위해 물과 미스트팬, 냉각수건을 제공하는 임시 냉방거점을 확대하고 7만5,000개 이상의 사업체를 대상으로 폭염에 따른 노동자 보호조치를 안내했다.
‘몇 곳 만들었나’에서 ‘누가 실제 이용했나’로
미국 도시들이 올여름 겪고 있는 상황은 기후위기 시대 폭염 대응정책의 평가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냉방센터를 몇 곳 지정했느냐만으로 정책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숙인 등 폭염 취약계층이 실제 시설을 이용했는지,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지, 이동수단은 있는지, 냉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구에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뉴욕시도 시민들에게 고령자와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 폭염 취약계층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시는 극심한 더위가 단순히 불편한 수준을 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며 에어컨이 없는 경우 냉방센터를 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 역시 폭염 때 경로당과 마을회관, 복지시설 등을 무더위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타난 ‘폭염 적응의 역설’은 국내에서도 쉼터 숫자뿐 아니라 실제 이용률과 접근성, 취약계층 발굴과 이동 지원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후변화로 폭염 위험이 커질수록 도시의 기후적응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후적응 정책의 중심이 ‘냉방공간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냉방서비스가 실제로 얼마나 도달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도시들이 올여름 마주한 ‘폭염 적응의 역설’은 시설 확대만으로는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탄소신문=유명근)